녹차란..
발효시키지 않은 찻잎을 사용해서 만든 차. 이 차를 처음으로 생산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곳은 중국과 인도이다. 그 후 일본·실론·자바·수마트라 등 아시아 각 지역으로 전파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중국에 이어 일본이 녹차 생산국으로 자리잡고 있다. 차는 제조과정에서의 발효 여부에 따라 녹차·홍차·우롱차로 나뉜다. 어떤 차를 제조하든 차나무의 잎을 원료로 사용한다. 새로 돋은 가지에서 딴 어린잎을 차 제조용으로 사용하며, 대개 5월·7월·8월의 3차례에 걸쳐 잎을 따는데, 5월에 딴 것이 가장 좋은 차가 된다. 이 차나무는 상록수로 비교적 따뜻하고 강우량이 많은 지역에서 잘 자란다. 녹차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딴 잎을 즉시 가열하여 산화효소를 파괴시켜 녹색을 그대로 유지하는 동시에, 수분을 증발시켜 잎을 흐늘흐늘하게 말기 좋은 상태로 말린다. 예전에는 사람이 가마솥에서 직접 잎을 손으로 비벼 말았다. 그 후 가열을 계속하여 대부분의 수분을 제거하여 어느 정도 바삭바삭하게 만든다. 근래에 와서는 증열기·조유기·유염기·재건기·정유기·건조기 등을 사용하여 차를 제조한다.
차의 기원과 전파경로
차나무의 어린잎을 따서 음료로 가공한 제품. 전세계적으로 애용되는 기호음료로서 커피나 코코아 기타 음료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음용량을 나타낸다. 차나무는 키가 2∼3 m인 관목과 30∼32 m에 달하는 교목이 있으며, 품종에는 중국종과 인도종이 있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차에는 야생차와 재배차가 있는데, 야생차는 828년(흥덕왕 3) 신라의 사신 대렴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씨를 지리산에 심은 데서 비롯되며, 중국산 소엽종이다. 재배차는 중국의 소엽종을 개량한 일본산 야부키타종으로서 1927년부터 경남·전남·제주에 이식한 것이다.
차의 기원
당나라의 육우(727?∼808?)가 지은 《다경》의 <차의 옛 일>편에는 한나라 이전에 차를 마신 고사가 적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료들은 인용된 책의 성립연대나 차를 가리키는 글자에 문제가 있다. 따라서 가장 믿을만한 것은 전한의 선제 때 왕포라는 선비가 만든 노예매매계약서인 《동약》(BC 59)이다. 이 계약서에는 양혜라는 과부의 전남편이 거느리던 편료라는 남종을 왕포가 1만 5000냥에 사온 뒤 편료가 할 일이 적혀 있는데, 무양에 가서 차를 사오는 일과 손님이 오면 차를 달여서 대접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이로써 차 마시는 풍습이 전한시대에 있었음을 알 수 있으므로 이를 차 마시기의 기원으로 본다.
차의 전파
〈서양〉 유럽에 중국의 차가 알려진 효시는 1559년 베네치아의 저술가인 G.라무시오의 《항해와 여행:Navigationi e Viaggi》에 의해서였다. 1609년부터 세계의 해상제패권이 에스파냐와 포르투갈로부터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넘어가자 두 나라의 동인도회사는 동양의 차를 유럽 각국에 운반하는 한편, 동남아시아에서의 차 재배에도 손을 대었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1610년에는 일본차를, 37년에는 중국차를 실어갔으며, 스칸디나비아 제국과 독일·프랑스·영국 등지에도 전파시켰다. 프랑스에는 48년, 독일에는 35년, 영국에는 30년대 중반에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를 통하여 차가 전파되었다. 그 뒤 영국은 홍차문화의 발상지가 되었고 으뜸가는 차의 소비국이 되었다. 러시아에는 명나라에서 돌아온 여행가인 I.메트로프와 B.얄리셰프에 의하여 중국의 차가 알려졌다. 그 후 중국차는 청나라 태조의 사신에 의하여 1618년 모스크바에 들어갔다. 러시아는 중국과 네르친스크조약(1689)과 카흐타조약(1727)을 체결하고 낙타로 중국차를 수입하여 1847년 그루지야에서 차 재배에 성공하였다. 미국에는 17세기 중엽 네덜란드 이민이 뉴암스테르담(지금의 뉴욕)에 이주하면서 차가 전파되었다. 1690년경에는 보스턴에서도 차가 판매되었으나 영국은 7년전쟁(1756∼63) 후 아메리카 식민지의 자주적인 움직임에 대하여 탄압적인 법령을 시행하였다. 즉 영국은 영·프 간의 식민지전쟁으로 소비된 전쟁비용을 식민지인들로 하여금 분담 보상시키는 시책으로 식민지에 대한 동인도회사의 차 전매권을 인정하는 법령을 시행하였다. 이에 반발한 보스턴 다회(The Boston Tea Party) 회원들은 인디언으로 분장하고 1773년 12월 16일 밤, 정박 중인 3척의 영국상선에 올라가서 차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 사건이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하였다.
〈아시아〉 중국차는 당나라 때부터 주변국가로 전파되었다. 이조의 《당국사보》에 의하면 티베트에서는 찬보왕때(781)에 당나라의 수주차·서주차·고저차 등을 마시고 있었다. 당나라의 숙종과 대종을 도와서 도읍을 회복한 회흘에도 다마무역에 의하여 차가 전파되었다. 몽골에는 13세기에 차가 전파되었다. 서부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이란·터키에는 19세기에 러시아의 다관인 사모바르(samovar)에 의한 음다풍습이 전파되었다. 아라비아의 무역상은 9세기에 중국차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의 베드윈족은 독특한 음다풍습을 간직하고 있다. 시리아와 레바논에서는 1930년경에 영국식 홍차를 마시게 되었다. 동남아시아의 차 재배는 유럽인의 식민지시대에 시작된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다업은 1823년 일본에 살던 P.F.시볼드로 하여금 일본의 차씨를 수입하게 하여 블루메가자바의 식물원에 심은 데서 비롯되었다. 인도에는 바라문교의 《베다경전》에 차가 적혀 있고, 인더스 골짜기에서는 BC 300∼200년경부터 마셔 왔다는 마야차가 전해온다. 그러나 인도가 세계 최대의 차 생산국으로 부상한 것은 영국동인도회사의 R.브루스 형제가 1823년에 아삼차를 발견한 데서 비롯되었다.
〈한국〉 한말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는 김해의 백월산에 있는 죽로차는 가락국 김수로왕의 비인 허왕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차씨에서 비롯되었다는 전설이 적혀 있다. 또 김부식의 《삼국사기》 중 <흥덕왕 3년 12월조>와 이규보의 《남행월일기》, 일연선사의 《삼국유사》에 전재된 <가락국기> <명주 오대산의 보질도태자전기> <오대산의 오만진신> <월명사와 도솔가> <경덕왕과 충담사> 등의 문헌과 중국에서 부처님께 차를 달여 공양하는 종파로서 신라에 전래된 연대(천태종540∼575, 율종602, 밀종635, 화엄종671, 선종은 826년경) 등에 의하여 차씨가 전래된 828년 이전에도 신라에서는 차를 마셨음을 알 수 있다. 차의 생산지는 남부지방에 국한되어 수요에 미치지 못하였므로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중국차가 수입되었으며, 한말과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차도 수입되었다. 그러나 일찍이 1292년에는 고려시대의 향차가 원나라에, 1627년, 29년, 36년에는 천지차와 작설차 50봉씩이 후금에, 1637∼45년에는 차 1,000포씩이 청나라에, 1923∼45년에는 정읍의 천원차가 오사카에 1944년경 보성 차밭에서 만든 5만 개의 전차가 몽골에 보내졌다. 또 73∼77년에는 대한다업과 마루베니회사와의 계약에 의하여 매년 10∼15 t의 보성녹차가 일본에 수출되기도 하였다.
차 만드는 법
찻잎 따기/ 찻잎은 일찍 딸수록 전질소 함유량이 많다. 찻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 음력 섣달에 따는 납차, 음력 2월 춘분 전후의 술날 이전에 따는 사전차, 한식의 금화(양력 4월 5∼6일경) 이전에 따는 화전차 그 이후에 따는 화후차, 화전도 화후도 아닌 금화의 한식 때에 걸쳐서 따는 기화차, 곡우절(양력 4월 20∼21일경) 이전에 따는 우전차와 이후에 따는 우후차, 입동(양력 11월 8일경)에 따는 소춘차 등으로 구분된다. 찻잎은 손·가위·동력예적기 등으로 딴다. 손으로는 하루에 한 사람이 15∼18 kg, 가위로는 90∼150 kg, 배부형 동력예적기로는 300∼350 kg, 자주형 동력예적기로는 1,000∼1만 6000 kg을 딴다.
차 덕기
차는 채취시기에 따라, 즉 제일 어린잎에서부터 맏물차·두물차·세물차 등으로 구분하며, 차나무에서 따낸 날잎은 햇볕에 쬐어 말리는 일쇄차와 인공적인 가열에 의해 말리는 차로 나뉘는데, 후자는 발효의 유무와 정도에 따라 불발효차(녹차)·발효차(홍차)·부분발효차(우룽차)로 구분된다. 가공방식에는 수공업적인 재래식과 기계로 처리하는 개량식이 있다.
① 녹차:불발효차인 녹차를 만들 때는 찻잎을 찌거나 덖어서 산화효소를 파괴하고 얼른 건조시켜 엽록소의 분해를 막아서 녹색을 유지시킨다. 찌거나 덖은 찻잎을 멍석에서 두 손으로 비틀어 비벼서 말리는데, 이것은 찻잎의 즙액을 세포 밖으로 짜내어 건조와 성분의 변화를 돕고, 더운 물과 융합할 때 차의 성분이 빨리 우러나도록 하며, 부피를 줄여서 저장과 운반에 편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국내에서 덖는 차는 반기계화 공정으로 처리되며, 찐 차는 증열기·유념기·건조기·절단기에 의하여 가공처리된다.
② 홍차:발효차인 홍차를 만들 때는 차의 날잎을 편평한 채반이나 광주리·시렁·위조기 등에서 시들게 하여 날잎의 무게가 약 55 %로 줄었을 때 30분 가량 비틀어 비빈 후 발효실에서 발효시킨다. 발효하는 동안에 산화효소에 의하여 타닌이 산화 및 중합되어 홍차 특유의 맛과 빛깔을 갖추게 되고, 알데히드의 변화에 의해 향기가 갖추어진다. 그리고는 유념기로 처리하고 햇볕에 말린 후 건조기로 말려 완성한다.
③ 우룽차:중국의 부분발효차의 하나이며, 발효도는 약 70 %이다. 제조법은 발효도만큼 산화효소를 활동시키다가 솥에서 덖든가 또는 햇볕에 말려서 효소를 파괴시킨다.
우려내기
차를 맛있게 달이는 중요한 요소는 수질, 끓인 물의 온도, 잎차, 우려내는 시간, 찻그릇 등이다. 물은 연수가 좋으며 수도물은 클로르칼크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받아서 쓴다. 경수를 쓰거나 내면이 부식된 철제의 탕관을 쓰게 되면 차의 타닌산과 화합하여 검은 침전물이 생긴다. 끓인 물의 양(잔의 숫자) 과 차의 품질(차잎 따는 시기에 따른 종류 등)에 따르는 적정온도(최고급은 50-60도, 고급은 60-70도, 중급은 70-80도, 하급은 80도 정도), 잎차의 투입량, 침출시간 등은 표준제원에 기준을 두어 기호에 따라 가감하는데, 잎차는 3번까지 우려 마실 수 있다.
차의 성분
차나무의 재배성적·품종·채다시기의 조만 등에 의하여 좌우되며, 품질을 결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찻잎에 담긴 전질소 함유량이다. 차에는 타닌산·카페인·아미노산 등이 함유되어 있으며, 타닌산은 12 % 전후로 맏물차에 가장 적고 두·세물차로 갈수록 많아진다. 타닌산은 떫은 맛과 관계가 있으며 수렴작용과 지혈작용을 한다. 홍차는 타닌산이 산화한 여러 가지 화합물을 함유하여 독특한 맛의 근원이 되므로 타닌산이 많은 잎에서 좋은 홍차를 만들 수 있다. 카페인은 쌉쌀한 맛의 성분으로서 평균 1∼3 % 함유되어 있는데, 신경을 흥분시켜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이뇨작용을 하며 피로회복에 효과가 있다. 아미노산은 차의 단맛과 관계가 있으며, 맏물차에 많고 두·세물차에 적다. 향기는 극히 미량이 함유된 정유성분에 의한다. 비타민 C는 녹차에 많이 있으나 홍차에는 발효시에 파괴되므로 함유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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