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정보

야생차 시배지 하동 쌍계사

등대장 2007. 4. 1. 15:18



쌍계사(경남 하동)
우리나라 야생차 시배지

화개에서 쌍계사(雙溪寺)로 가는 5km 도로변에 늘어선 벚꽃나무들은 봄이면 ‘벚꽃터널’을 이루어 상춘객을 끌어모을 뿐만 아니라 계곡과 어우러진 모습이 사시사철 아름다워 언제 찾아도 지루하지 않다.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3년(724) 의상의 제자 삼법(三法)이 창건하였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육조 혜능의 정상(頂相)을 모셔 삼신산(三神山) 눈 쌓인 계곡 위 꽃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고 귀국하여 현재 쌍계사 자리에 이르러 혜능의 머리를 묻고 절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

이후 문성왕 2년(840) 진감선사가 중창하여 대가람을 이루었으며, 정강왕 때 쌍계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임진왜란 때 크게 소실되었으며, 인조 10년(1632) 벽암(碧巖)스님에 의해 중건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쌍계사 매표소 앞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은 절의 좌우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두 갈래의 물이 만나 합쳐진 것으로, 절이름이 쌍계(雙溪)인 연유를 짐작하게 한다. 이 다리를 건너 조금 올라가면 길목 좌우에 큰 바위 두 개와 나무장승 두 기가 문과 문지기처럼 버티고 서 있는데, 바위 양쪽에는 각각 쌍계(雙溪)와 석문(石門)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고운 최치원이 지팡이 끝으로 쓴 글씨라고 전한다.
장승을 지나 일주문으로 가는 길목에는 석등 한쌍이 세워져 있는데, 경내 곳곳에서도 근래에 세운 거대한 석등을 목격할 수 있다.

‘삼신산 쌍계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화려한 다포집인 일주문을 지나면 곧바로 문수,보현 동자를 모신 맞배집 금강문이 나온다. 곧이어 역시 맞배집인 천왕문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누문인 팔영루(八詠樓)와 마주치게 되며, 팔영루를 통과하면 대웅전에 들어서게 된다. 이들 건물은 모두 일직선상에 가깝게 놓여 있으나, 산비탈을 이용한 낮은 층단이 계속되고, 또한 중간중간에 다른 건물들이 비대칭적으로 들어서 있어 문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깊숙이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듯 느껴진다.

팔영루 앞에 서 있는 쌍계사 9층석탑은 1990년에 세운 탑으로,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석가 진신사리 등을 봉안하고 있는데, 월정사 8각9층석탑을 닮았다. 팔영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 누마루이다. 진감국사 혜소(眞鑑國師 慧昭, 774~850)가 중국에서 불교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쌍계사 팔영루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에 어울리는 범패(梵唄)를 만들어냈으며, 오랫동안 범패 명인들을 배출하는 교육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팔영루라는 이름도 진감선사가 섬진강에서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서 범패를 작곡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팔영루의 왼쪽에 경내의 주축을 이루는 일주문․팔영루․대웅전 영역에서 비껴나 부축을 이루는 일련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경내 주축과 계곡을 사이에 두고 청학루로 열리는 금당 영역이 그것이다.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을 모신 탑전인 금당, 팔상전 등이 여기에 있으며, 쌍계사가 처음 문 열었을 때의 터로 추정되고 있다. 일반인의 출입은 통제돼 있다.

쌍계사내에는 대웅전(보물 제500호), 진감선사 부도비(국보 제47호), 쌍계사 부도(보물 제380호), 적묵당(보물 제485호),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제925호) 같은 지정 문화재를 비롯하여 명부전 앞의 마애불, 대웅전 앞의 석등, 각 전각의 탱화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현판과 주련 들이 많아 눈길을 끈다. 일주문의 현판 ‘삼신산 쌍계사’, ‘선종 대가람’이라는 글씨는 해강 김규진의 것이다.

글씨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진성여왕 1년(887) 최치원이 글을 짓고 쓴 진감선사 부도비이다. 대웅전 앞에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서 있는 모양새가 일직선축의 단조로움에 변화를 준다. 부도비는 문장으로 보거나 서체로 볼 때에도 매우 우수하여 국보로 지정돼 있다. 마멸이 심하여 육안으로 식별하기는 힘들지만, 다행히도 영조 때 만들어놓은 목판이 전해지고 있어 내용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오른쪽의 명부전 앞 큰 바위에는 마애불이 있다. 바위의 한 면을 사각으로 움푹 파내고 그 안에 여래형의 조상을 두껍게 양각하여 감실 안에 불상을 앉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감실 위에 한자로 ‘나무아미타불’이라 쓰여 있다. 높이는 1.35m 정도이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쌍계사 소속 암자로는 국사암,불일암,칠불암 등이 있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로 가는 길에 오른쪽의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면 국사암이 나선다. 국사암은 삼법스님이 머물렀던 곳이며, 진감선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살아 나무가 되었다는 천년 넘은 느릅나무가 있어 눈길을 끈다.

불일암 가는 동안에는 지리산의 유일한 거폭으로 사철 마르지 않는다는 불일폭포도 만난다. 보조국사의 시호를 딴 불일암은 신라의 원효․의상이 도를 닦고 고려 때 보조국사가 머물렀다.

칠불암은 가락국의 일곱 왕자가 성불하였다는 고찰로, 한 번 불을 때면 한 달 반 동안이나 따뜻했다고 하는 구들이 있는 아(亞자)방터가 있다.

쌍계사는 차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매표소 가까이 계류가에 1981년에 세운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遠碑)’가 있고, 화개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벚꽃길에도 ‘차시배지(茶始培地)’ 기념비가 있다.

차는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에서 처음 들어왔고, 흥덕왕 3년(828) 김대렴(金大簾)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줄기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김대렴이 차를 심은 이후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조성․보급했다고 하는데, 아직도 이 길가에서는 차밭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여행 메모■

◆드라이브 메모:88고속도로 남원 나들목으로 진입, 19번 국도-구례-토지면-화개장터-쌍계사까지 간다.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으로 진입, 17번 국도-남원-19번 국도-구례-화개장터-쌍계사까지 간다.

◆대중교통:서울남부고속터미널에서 하동(구례 경유)은 직통버스가 1일 6회(09:10~18:30) 운행한다. 기차편은 서울역에서 구례구역으로 가는 철도편을 이용. 구례와 하동에서 화개장터로 가는 군내버스편이 있다.

◆숙박:쌍계사 근처엔 조용한 산골 민박집이 많고, 요즘엔 여관도 여럿 들어섰다. 섬진강변을 따라 민박집과 장급 여관이 있다. 섬진강팬션(055-884-8051), 월드파크(055-883-2022), 쉬어가는누각(055-884-0151), 유황천모텔(055-884-5950), 미리내호텔(055-884-7292) 등

◆별미집:쌍계사 입구에 청운산장·청운식당(055-883-1666)과 단야식당(883-1667), 화개장터 옆의 옛날팥죽(884-5484)집이 권할만한 맛집이다.